마음 속 빈자리엔 누구나 채우고 싶은 욕구가 있다. 송이의 빈자리엔 아빠를, 엄마의 빈자리에는 사랑을, 광석 아저씨의 빈자리에는 추억을 채운다.
송이는 엄마와 아빠의 이혼으로 엄마와 살고 있어서 아빠의 부재를 메꾸어 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면접교섭권으로 만나는 아빠는 그런 마음도 모르고 쿠키를 내어오니 야속한 마음만 생긴다. 더구나 엄마에게는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긴 것 같아 짜증만 나고 그 대상에게 이유모를 원망과 증오만 커지기 시작한다.
깊은 속내를 나눌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이웃들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며 송이를 달래주지만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고, 자신만 생각하는 엄마는 자신을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것 같아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저자는 “겨울 기린”을 통해 엄마는 삶의 슬픔을, 송이는 의지로 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담아 각각 다른 시각이지만 독자로 하여금 모녀의 입장을 같이 고민하게 만든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대호 씨. 가만히 보고 있으니 저 맑은 눈망울이 너무 애처롭고 애틋해 보여. 슬프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p110)
“기린아,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슬픈 거야. 통유리 안에 갇혀 있는 너와,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한송이.”(p.160)
가족이라고 함께 지낸다고 해서 모두 속마음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나의 선택을 강요할 수 없다.
아슬아슬한 모녀의 관계는 어려움 속에서 차츰 속마음을 용기 내어 말하는 소통의 시작으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가족은 혈연으로 이루어졌지만 모두가 같은 하나가 아닌, 개별 개별의 인연이다. 또한 인권 이해가 높아짐에 따라 ‘소유’ 개념도 희미해졌기 때문에 개별의 존중은 더 필요하다.
그래서 ‘자신의 삶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할머니의 원칙처럼 부모자식 간이라도 각자의 삶에 대해 존중해주고 거리를 둔다면 ‘따로 또 같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부모 자식이라도 너무 엉켜 있으면 안 좋아. 쾌적한 거리감을 두고 제 몫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 그게 서로를 위하는 거야.”(p.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