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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평가단8기] 잃어버린 집
작성자 이지연 등록일 20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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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마지막 황족의 비사(悲事)

조선황실의 상징꽃인 자두꽃(李花이화) 문양이 은박으로 입혀진 책 표지가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덕혜옹주>의 인기에 힘입어 그녀의 오빠인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이 은'과 마지막 적통 직계손 '이 구'의 시선에서 그려지는 조국을 빼앗진 이들의 숨조차 편히 내쉴 수 없었던 암흑의 시대를 권비영 작가는 담담하게, 가슴 먹먹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인상적인 서문만으로도 한 사람의 인생을 충분히 가늠하게 하는 '잃어버린 집'은 일제시대에 일어난 역사적인 일들과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삶을 살아낸 황실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조선의 비극적인 역사와 개인의 비극적인 역사가 어우러져 비극의 극대화를 느끼며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속국으로 살아야 했던 아픈 역사를 곱씹어보게 해줍니다.

"나는 죽었다. 이미 오래전에 몸을 벗어버린 영혼이 홀가분하다. 누더기 같은 육신을 벗어 땅속에 묻고 바람처럼 걸릴 데 없이 자유로워진 영혼. 비로소 나는 편안하다. 까마득한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고 나를 옭아매던 생각의 사슬로부터도 자유로워졌을 때 나는 비로소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차가운 땅에 묻힐 내 육신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호곡하는 이들도 잠시일 뿐, 사라지는 것 에 대한 고마움을 그 어떤 호사에 비하랴.

나를 낳아준 부모도, 나를 위로하던 사람들도, 나를 사랑하던 여인도 없다. 나는 그저 홀로 외로운 영혼일 뿐이다. 죽어서 좋은 것은 몸을 버릴 수 있음이요, 더 좋은 것은 잊힐 수 있음이라. 내 온몸을 휘감은 운명의 거미줄,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순간마다 나는 바람처럼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하여 부탁하노니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마라. 그 누구도 나를 위해 울지 말라.

나는 내가 태어난 집이 보이는 호텔의 한 방에서 이승의 끈을 놓았다.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두고 저만치 내려다 보이는 내가 태어난 집 어디쯤의 방을 바라보면서 잠시 현기증을 느꼈다.... 고통스럽게 바라보아야 했던 세상이 나와 함께 물속으로 잠겨 들었다... 아득하게 세상이 멀어져 갔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서 버둥대다가 곧 고요해졌다. 순간, 그리운 얼굴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어머니, 아버지, 줄리아...나는 조금 웃었던 것 같다.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아무것도 몰라서 행복했던 그 시절.

아버지는 여전히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나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작은 키를 감추느라 늘 가슴을 내밀고 당당한 포즈를 취하려 했던 분. 나는 아버지 쪽으로 다가 가서 조용히 아버지를 안았다. 차가운 죽음의 온도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어머니는 두 팔로 나를 안았다.
"그래, 사느라 고생하였다. 고해를 건너오느라 고생하였다."
어머니 마사코가 겪어온 고해를 알기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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