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Home >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신간평가단]라이프가드
작성자 박형녀 등록일 2023-01-10    
첨부파일



 

[검은 개들의 왕],[바람을 만드는 사람]의 저자 마윤제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여덟 작품의 단편들은 바다가 많이 나오고 묵직한 내용들이다. 우리가 모르고 있던, 혹은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어 했던 내면의 적나라한 감정까지도 낱낱이 들여다보게 만든다.

 

아버지 장례식 날, 서른다섯 해 만에 집을 떠난 형이 나타났다가 난 여전히 네가 부럽다는 말을 남기고 다시 사라졌다. 어느 봄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새엄마와 함께 온 형이었다. 늘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공부하다 식사 시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새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형이 사라졌었다. 어디선가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강물이 마당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오래전 내 몸을 휘감은 그 강물이었다. 영원히 잡히지 않을 불빛을 바라보는 형의 눈빛이 강물처럼 깊었다.[()]

 

이따금 제자리가 아닌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이 있었다. 그런 경우는 대부분 사서의 단순한 실수였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도서 목록에 없는 책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었다. 바코드가 붙어 있지 않은 책을 그는 유령 책이라고 이름 붙였다. 유령 책은 출생신고서를 받지 못한 것이다. 세상에는 자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도서관의 유령들]

 

유지는 엄마를 따라 낯선 도시로 자주 이사를 한다. 어느 해변 마을에서 중년 남자와 진희와 함께 살게 된다. 노트에 가지고 싶은 물건을 적었다. ‘바다가 보이는 넓은 방이었다. 어릴 때부터 수영을 배운 유지는 진희에게 수영을 가르쳐준다. 여름이 끝나 갈 무렵 진희의 죽음을 맞이한다. 유지는 자신이 진희에게 가장 중요한 걸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다를 유영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라이프가드]

 

오래전 한 청년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는 매일 산을 올랐고 최는 엽총을 사서 수렵을 다녔고 박은 바다낚시에 빠져들었다. 권이 농장을 사들여서 멧돼지를 방목했다. 식당을 열었다. 그날 이후 그의 당선을 위해 밤낮으로 쫓아다녔다. 그가 당선되어야만 우리가 원하는 자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화사한 날씨가 우리의 새로운 앞날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어느 봄날에]

 

북쪽 해안에 도착한 여자는 캔을 열었다. 순간 제주 해안 절벽의 바에서 마신 버진 블루 라군칵테일이 떠올랐다. 섬을 돌아다니는 건 뱃길이 끊어지면서 섬에 갇혀버린 여자와 바다가 제 색으로 돌아올 때 들어간다는 남자, 중국집에서 키우는 개들밖에 없었다. 뱃길이 열린다는 소식은 여전히 없었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가 스쿠버중에 잃어버린 펜던트를 찾으러 들어간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이 몇 명이 모여서 그사람 아직도 바다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해녀 할머니는 바다를 가리키며 속았어라고 소리를 내질렀다.[버진 블루 라군]

 

사내아이 두 명이 황무지로 들어간 뒤에 실종되었다. 까마귀가 떠난 황무지에 옥수수 싹 서너 개가 얼굴을 내밀더니 옥수수가 열리기 시작했다.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더니 사금파리 조각이 나왔다. 그날 기분 내키는 대로 판다고 하였다. 계속 팠는데도 그것이 나타날 조짐이 없었다. 쇠붙이가 강한 자기에 끌리는 것과 비슷해서 계속 파는 것이다. 황무지에 까마귀 떼가 날아온 것과 옥수수가 황무지를 뒤덮은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진실이오. 진실하지 못하면 서로 연결될 수 없소.[옥수수밭의 구덩이]

 

현기는 토피, 셰리, 스파이시, 몰트, 스모키향이 어우러진 조니워커 블루를 향유하는 삶을 향해 폭주기관차처럼 질주했다. 부산에서는 바다를 등지고 치열하게 싸워야 했지만, 제주에서는 욕망의 실타래가 올올이 풀어졌다. 광치기해변의 검은 모래에 누운 현기는 어부가 되어 고기잡이를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바닷속으로 가라앉으면서도 술의 맛을 떠올린다.[조니워커 블루]

 

죽은 고래의 몸을 파고들어 가던 여자의 하얀 몸이 떠올랐다. 전망 좋은 방, 필요하지 않소? 그 방에선 잠들 수 있습니까? 오로지 무거운 다리를 끌고 힘겹게 한 걸음씩 계단을 올라갔다.[전망 좋은 방]

나는 이 단편이 어둡고 어렵게 읽혔다. 단편을 읽는다는 건 우리 자신의 뒷모습을 훔쳐보는 것과 같다. 우리 삶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누군가의 삶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단편소설을 읽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번호 제 목 작성 날짜
621 [신간평가단9기] 아브카라디브카 마법의 언간독 이지연 2024-03-04
620 [신간평가단] 로고 신경재 2024-03-03
619 [신간평가단 9기] 아브카라디브카, 마법의 언간독 원혜정 2024-03-02
618 [신간평가단] 마음 근육 튼튼한 내가 되는 법 조윤희 2024-03-01
617 [신간평가단9기] 아브카라디브카, 마법의 언간독 박현정 2024-02-29
616 아브카라디브카 마법의 언간독 이명숙 2024-02-28
615 [신간평가단] 초록눈의 아이들 신경재 2024-02-28
614 [신간서평단 9기] 아브카라디브카, 마법의 언간독 김길성 2024-02-28
613 마법의 언간독 신간평가단9기박혜경 2024-02-28
612 [신간평가단] 『아브카라디브카, 마법의 언간독』 유현주 2024-02-26
1 2 3 4 5 6 7 8 9 10 다음 10 개